그리스 요리엔 원래 우리나라 칼국수나 소면, 라면, 냉면처럼 국물 있는 면요리가 없습니다. 파스타 종류는 많지만 다들 소스와 곁들이는 요리들이고, 국물이 있는 수프 종류는 고기와 야채, 쌀을 재료로 해 만드는 요리가 대부분입니다.

동양식 면요리 라고는 그리스의 중국식당에서 볶음 면요리 정도만 경험해보았던 동수 씨는, 그리스에 제가 여행을 올 때마다 "한국 라면이 그렇게 맛있다던데 조금만 갖다 줄 수 있을까?"라고 말을 했을 만큼 한국 면요리에 관심이 많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살게 되어 다양한 면요리를 경험하면서 어쩜 이렇게들 맛있냐고 극찬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국물 면요리에 대해 경험한 세월이 짧다 보니, 제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동수 씨가 이해하지 못 하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국물 면요리는 만들고 바로 먹지 않으면 불어서 맛이 없다. 특히 라면은 더욱 그렇다!' 라는 부분에 대해서입니다.

물론 저희가 그리스에서 와 살게 된 후 한국 면요리를 자주 해서 먹을 일이 많지는 않았고, 한국라면을 한국에서 부모님께서 보내주시면 아껴 먹느라고 자주 먹지는 않다 보니, 동수 씨가 그리스에 온 이후로 국물 면요리를 경험할 기회가 더 적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게다가 한국에 있을 때는 칼국수, 짬뽕 등을 싼값에 흔하게 사먹을 수 있었기에, 식당에서야 주문해서 식사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먹곤 하다 보니 더더욱 이런 부분에 대해 잘 몰랐던 것입니다.

 

동수 씨가 이렇게 면요리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제가 어쩌다 국물 있는 면요리를 할 때, 면이 불기 전에 빨리 와서 먹어야 하는데 그 때마다 동수씨는 다른 그리스 요리를 먹을 때처럼 천천히 하던 일을 하다가 식탁에 늦게 와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놓고는 국물이 졸아서 퉁퉁 불은 면을 보며 "어? 국물이 왜 이렇게 없어?" 라며 제게 도리어 잔소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어쩌다 라면이라도 끓이는 날엔 끓이기 전부터 "지금 와서 식탁에 앉아 줘. 부탁이야. 라면은 불으면 맛이 없다니까!" 라고 자꾸 말을 하게 되었고, 그러면 또 동수 씨는 천연덕스럽게 "불어도 맛만 좋구만. 난 불은 라면도 좋아. 근데 국물을 좀 늘려줄 수 없을까?" 라는 말을 해서, 저는 나중엔 아예 라면 면만 건져 놓았다가 동수 씨가 식탁에 앉으면 국물을 부어주는 번거로운 일까지 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양파와 계란은 꼭 넣어야 한다고 요구사항은 많아서, 저는 동수 씨에게 "라면이 얼마나 쉽게 불게 되는지도 모르면서, 뭘 그렇게 요구 사항은 늘 많으실까." 투덜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동수 씨는, 지난 금요일 마리아나가 3학년 종업식을 하고 저와 함께 사무실에 들렀을 때, 마리아나가 3학년을 잘 마무리했으니 선물을 사줘야겠다며 아이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3학년을 끝내고 방학을 맞이해서 행복한, 마리아나와 친구 바실리끼

 

 

다시 돌아온 두 사람은 싱글벙글이었고, 도대체 뭘 사줬길래 사준 사람도 저렇게 좋고 받는 사람도 저렇게 좋은 건가 싶어 "선물이 뭔데?" 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선물은 다름 아닌, 천연향수였습니다!

 

 

 

얼마 전 저희 사무실에서 가까운 곳에 천연향수와 비누를 파는 가게가 생겼는데, - 허브와 올리브가 자라기 좋은 기후의 그리스에는 이런 가게들이 참 많습니다.- 동수 씨는 마리아나를 거기에 데리고 가서 마음에 드는 향을 고르라고 했고, 마리아나는 자기가 평소 좋아하는 바닐라와 딸기 향을 골라 원하는 용량만큼 주문해 사서 오게 된 것입니다.

냄새를 맡아 보니, 천연 향이라서 인지 튀지 않는 은은한 향기가 나서 작은 여자아이가 뿌리고 다니기에도 괜찮겠구나 싶었습니다. 워낙 냄새에 민감한 그리스인들이라 큰 아동복 매장에도 어린이를 위한 향수들을 대부분 다양하게 판매하곤 하는데, 그런 유명한 향수들보다도 천연향이라서 도리어 더 괜찮게 느껴졌습니다.

 

나중에 마리아나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저는 동수 씨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향수를 사줄 생각을 다 했대?"

"하하. 마리아나도 이제 이렇게 많이 컸는데, 향수를 잘 사용할 줄 아는 소녀가 되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이것 받아. 사면서 올리브나무 네 것도 하나 샀어."

저는 제 것까지 챙긴 것에 깜짝 놀라서 얼른 뚜껑을 열어 향수를 뿌려보았는데요.

"음! 향 좋네. 나 향수 떨어진 거 알고 있었구나?"

 

그러자 동수 씨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흠! 부인 향수 떨어진 것 정도는 알고 있다고. 내가 라면에 대해서는 한국인인 너보다 잘 몰라도, 원래 센스는 좀 있잖아? 내가 좀 센스 있는 남자라고 너도 생각하지? 그렇지? 인정하지??"

 슈퍼맨

"하..하..그래. 인정...해...뭐, 인정 한다고. 아무튼 향수 고마워. 안 그래도 사러 가려 했는데 잘 쓸게."

얼굴 가득 으쓱함이 가득해서 하늘로 날아갈 것 같은 자신감에 차 있는 동수 씨에게 제가 어떻게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가끔 자신을 마리아나와 동급으로 취급하지 말라고 항의하면서도, 또 잘한 일에 대해 옆구리 찔러서라도 제게 꼭 인정받고 싶은 '자칭 센스 있는' 동수 씨입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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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장례식은 오늘 이른 저녁 때 잘 치러졌습니다. 이렇게 하루 만에 치르는 그리스식 장례식이 여전히 적응이 안 되고 서운한 마음이 들지만, 참석했던 수백 명의 지인들 대부분이 그녀와 마지막 인사를 못 했다고 그 어떤 장례식보다도 서럽게들 울어서, 도리어 제가 마지막 인사라도 나눌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블로그를 통해 저를 마음으로 위로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덕분에, 저도 장례식장에서 마리아의 장성한 두 자녀들이 마음껏 울도록 깊이 꼭 안아줄 수 있었습니다...

함께 장례식에 참석하셨던 저희 시어머님 역시 많이 우셨는데 몇 시간 동안 제 팔을 놓지를 못 하시는 것을 보면서, 어머님이 어떤 형태로는 저를 의지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던 날이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Posted by 꿋꿋한올리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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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민트맘 2014.06.17 08: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연향수라니 향수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몹시 궁금해집니다.
    역시 센스 짱이신 동수씨, 잘하셨어요!!

    하루만에 치르는 장례식은 삼일장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참으로 아쉽겠어요.
    명복을 빕니다...

  3. Favicon of http://blog.daum.net/effigie BlogIcon 차차 2014.06.17 0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 라면에 대해서 모르면 어떻겠어요.
    이렇게 센스있는 남편분인데...^^
    남편분이 옆구리 콕 찔러 칭찬 받기를 원하기 전에
    먼저 올리브 나무님께서 아주 감동한 액션을 취하셨어야지요.
    그러면 다음에 향수를 다 썼을 때 대용량 향수가 뒤따라 올거예요...^^

  4. 보헤미안 2014.06.17 10: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동수님은 라면을 즐기실 자세가 안되어 계시네요!!
    라면을 먹을 때는 다 완성되지마자 빠르게 젓가락을 이용해서 라면을 먹어야만 그 참맛을 느낄 수 있는데
    말이죠☆
    하지만 좋아하시기는 엄청 좋아하시나봐요☆ ㅋㅋㅋㅋ
    센스는 넘치시네요☆ 향수가 다 떨어져가는 것도 알고 마리아나것 까지☆
    자칭 타칭 센스넘치는 동수씨님이십니다☆ ㅋㅋ

  5. Favicon of http://indo4u.tistory.com BlogIcon 자칼타 2014.06.17 10: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연향수.. 자극도 없고 좋을 것 같아요.^^
    라면... 제 아내도 연애 초반때 제가 라면 끓이면 느긋느긋하게 움직여서 저한테 잔소리 많이 들었었어요 ㅋㅋ
    지금은 면빨이 꼬들꼬들하게 잘 끓여서 바로 먹고 있어요~

  6. BlogIcon carlybelle 2014.06.17 11: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리아씨를위해서 기도하고 올리브나무님도 이것을 지나가실수 잇도록 기도할게요!

    라면, 면 요리는 저도 정말 좋아합니다 제대로 동양적인 요리라는 느낌이 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아요 ㅎㅎ 제 친구들이나 남친은 이해못하지만 -.-; 면이 불어버린다는 것도 이해 못하는 것도 똑같네요 ㅋㅋㅌ 불려서먹어요완전 ㅋㅋ

    아 저도 천연비누나향수진짜좋아하는데~~ 그리스 정말 최고네요!

  7. 키키영구 2014.06.17 14: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수님
    옆구리 콕콕 찌르시는 센스~~또한 일품이세요 ㅋㅋㅋ
    마리아나도 맛있는 향을 좋아하는군요
    마치 저처럼 ^^;;

    마리아나 사진 속에서 쑥쑥쑥 잘 자라고 있네요
    와우~~~!
    올리브나무님의 블로그가 마치
    마리아나의 성장기를 기록한 옴니버스 영화 같습니당~~^^

    본격적인 여름이네요
    팥빙수가 땡기는 것을 보니 ..
    동수님도 팥빙수 좋아하시나요??
    그리스에 팥 요리 없죠?
    패스푸드점에 가면 좀 저렴한 값에 즐길 수 있었는데
    놋~데리아 갔더니 4천원이라고..해서
    히야~값이 올랐네.. 하면서 먹고 왔네요

    마리아나에게 천국 같은 방학이 시작됐네요!
    야야야호!!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늦잠도 자고 신나게 친구들과 뛰어 놀고
    즐거운 방학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 그리고 근황이 궁금한 분이 있는데요
    꽃미남 그 분은 군대 가셨나요? ㅎㅎㅎㅎ
    나중에 여친과 함께한 커플 사진 좀 올려주세요 ^^
    남의 사생활이 왜 이렇게 궁금한지 ㅋㅋ




  8. Favicon of http://fishdream.tistory.com BlogIcon 류현 2014.06.17 16: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라면 끓여먹고 올께요 ㅋㅋㅋ
    천연향수(먹는 건가요?) 없이 바디 크린저 향기만 10분(?)남기는 남자 나란 남자 ㅠ.ㅠ

  9. 2014.06.17 1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0. 2014.06.18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사이비 2014.06.18 11: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리브님 티스토리 초대장 받았는데,, 가입을 해야 하는건가요?? 가입하기가 안되던데...
    이것저것 보고 눌러봐도,, 도대체,,
    좀 어렵던데요..

    다음아뒤로도 된다하는데,,제가 컴맹인지.. 내용이해를 못하는건지.. ㅎㅎㅎㅎ
    40넘어보니 머리가 많이 딸려요,,

    바쁘신데,, 번거롭게 하네요..
    오늘도 가족이야기 잼나게 읽었습니다. 친구분 명복을 빕니다.
    아침되면 오늘은 또 어떤 글이 있을지 기대되요.. ^^

    좋은하루 보내세요

    • Favicon of http://greekolivetree.co.uk BlogIcon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06.18 20: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제 기억에 초대장을 받으신 이메일에서 바로 티스토리로 가서 가입하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에구. 저도 새로운 정보는 잘 몰라서 헷갈릴 때가 많답니다^^
      파이팅입니다!

  12. Favicon of http://7network.tistory.com BlogIcon 개굴개굴왕 2014.06.18 13: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블로그 내용이 좋아서♡ 메타블로그 서비스인 블로그앤미(http://blogand.me) 에 등록했습니다. 원하지 않으시면 삭제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13. Favicon of http://sbr06136.tistory.com BlogIcon 오렌지 주스 2014.06.18 17: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리아나 좋겠어요
    우리 아이들은 이번 주 까지 시험이라 아직 열공 중이예요.
    제일 하고싶은 것 - 늦잠 자기랍니다.
    귀여운 동수씨!!! 죄~~송

  14. Favicon of https://fruitfulife.tistory.com BlogIcon 열매맺는나무 2014.06.18 18: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내용 다음에 안타까운 소식이 있네요. 친구분 돌아가셨나봐요.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15. BlogIcon 포로리 2014.06.18 21: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센스있는거 맞네요. 마리아나는 좋겠어요. 그나저나 전 요즘 노인냄새가 난다는...

  16. BlogIcon 콩양 2014.06.19 0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연 향수는 어떤 향이 날까 궁금하네요~ 동수씨께서 올리브나무님 기분을 풀어주고 싶으셨나봐요^^

  17. 나인 2014.06.19 00: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블로그 잘 읽고 갑니다^^

    먼 타국에서 즐겁게 살고 계시는 모습 보니까 기분이 좋습니다~

    요즈음 월드컵 잘 보고 계신가요?

    대한민국 선전할 수 있도록 그리스에서도 힘좀 팍팍 넣어주세요

    그리고 그리스도 2차전을 일본과 치루더군요.

    ㅎㅎㅎ 한국에서 그리스가 필승할 수 있도록 응원하겠습니다.

    그날 하루만큼은 나도 명예 그리스人 ㅋㅋㅋ

  18. Favicon of http://lincat.tistory.com BlogIcon 적묘 2014.06.19 03: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까이 있으면 꼬옥..안아드리고 싶네요.
    마음으로...꼬옥...도닥도닥...

    그리고 동수씨의 센스 짱!!! 만세!
    향긋함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센스입니다 ^^

  19. 2014.06.20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 BlogIcon 홍금희 2014.06.20 2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연향수는 어떤 향일까 궁금하네요. 조금씩 숙녀가 되어가는 사춘기 울 딸들에게도 선물해 주고 싶네요 ^^

  21. Favicon of http://blog.naver.com/cryingnutkin BlogIcon 이우현 2015.06.27 22: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에 우연찬게 검색하다 알게 되서 하루동안 한참 왼만한 글은 다 보았었는데

    잊고 지내다 다시 생각나서 검색해서 왔습니다. 여전히 소소하고 행복한 이야기를 올려주시는 군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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