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들은 대개 임산부에 대한 배려를 잘 하는 편입니다. 

한국에 비해 몸에 딱 붙어 몸매가 드러나는 임부복을 선호하는 그리스 문화 덕에 그리스에서 임산부의 배는 더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데, 그런 "나 임신했어요!" 라고 배를 내밀고 다니는 임산부들을 마주하는 일반인들의 태도는 놀랄 정도였습니다.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나와 친하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임산부라는 것을 아는 순간 상당히 친절을 베풀어서 당황할 때가 많았는데, 일예로 임신 초기 딸아이 학교에서 학부모 상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가 아무 요청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엄마들은 순서가 뒤였던 저부터 상담을 받으라고 앞 순서로 바꿔주는 바람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개중엔 평소 친분이 적은 엄마들도 있었고 대부분 직장맘들이어서 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와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는데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든 제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된 순간 상대는 제게 무조건 의자부터 내어주며 자꾸만 앉으라고 하거나 물이나 음료를 가져다주어 당황한 적도 많았습니다.

한번은 대형마트에서 계산을 하다가 약간 잔돈이 부족해서 지갑과 가방을 급하게 뒤지던 중이었는데, 제 뒤로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미안한 마음에 산 물건 봉투를 무겁게 든 채 정신없이 잔돈을 찾던 저 대신 바로 뒤의 순서를 기다리던 아주머니께서 부족했던 80센트(약 1,000원)를 제 대신 내주며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어휴. 임신도 했는데 어떻게 힘들게 짐들고 돈을 계속 찾겠어요.

내가 내줄테니까 그만 찾고 저기 가서 좀 앉아요."

 

저는 너무 미안해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가방에 잔돈이 더 있는데 얼른 찾아서 드릴게요." 라고 다급하게 대답했는데, 아주머니는 "괜찮아요. 큰돈도 아니고... 힘들것 같은데 잠시 앉았다가 얼른 집에 가서 쉬어요." 라고 말하며 자신의 물건 계산이 끝나자마자 제 돈은 받지도 않고 사라지셔서, 저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마운 그리스인들의 임산부 배려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들이 임산부를 대하는 태도 중에 상당히 부담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태도가 하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에 전해 내려오는 옛말 때문인데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이 옛말을 하며 임산부들을 괴롭힐 때가 많습니다.

 

바로 "임산부는 일단 음식 냄새를 맡았다면

그 음식이이 무엇이든 누구것이든 먹어야 한다!

그게 아기에게 좋다!" 라는 태도입니다.

 

물론 세계 어디나 임산부에게 잘 먹으라고 권유하는 것은 같을 것입니다.

하지만 임산부마다 입덧이 있는 경우도 있고, 아기의 체질에 따라 먹고 싶은 음식이나 먹기 싫은 음식이 그때그때 다를 수밖에 없을 텐데, 그리스 어르신들은 이런 것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옆집에서 어떤 요리 냄새가 나도 그걸 얻어다 먹어야 한다고 하고, 만약 남의 집에 방문했을 때 그 집 음식 냄새라고 우연히 임산부가 맡게 된다면 조금이라도 그걸 먹어야 한다며 억지로 음식접시를 들이밀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그 메뉴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든 싫어하는 음식이든 현재 배가 부르든 먹고 싶지 않든 상관 없이 말이지요!!

 

제 경우에 지금은 이런 문화를 알게 되어 적당히 대응하는 요령도 익혔지만, 임신 초기엔 가뜩이나 입덧도 심한데 먹으면 토할 게 뻔한 모든 음식들을 억지로 먹으라고 들이미는 어르신들 덕에 정말 큰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시어머님의 경우 제가 입덧 중에 따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요리해서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뒷집이니 당신이 요리한 음식 냄새가 당연히 날 거라며, 뭐든 요리하는 대로 제게 들고 오시며

 "네 시할머니가 네 시아버지를 임신했을 때 이웃에서 하는 요리 냄새를 맡았지만 못 먹은 음식이 많았다는데 그 것 때문에 네 시아버지 이마에 점이 생긴거라더라~~"

요리

라는 이상한 이론을 제시하시며 자꾸만 음식을 들이미시며 제가 도저히 속이 안 좋아서 못 먹겠다고 거절하면 떨떠름한 표정을 짓곤 하셔서 저를 많이 당황하게 만드셨습니다.

 

이렇다보니, 어쩌다 이웃에서 바비큐파티라도 하게 되어 온 동네에 떠들썩한 그리스 음악과 고기 굽는 연기가 진동하는 날은 참 야단법석한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시어머님은 제게도 분명히 냄새가 풍겼을 거라고 여기시고 일부러 그 집에 가서 고기를 한 접시 얻어다가 이미 저녁을 다 먹은 저에게 먹으라고 내밀게 되시고, 그 바비큐 파티에 참석한 사람 중에 한 두 사람은 꼭 따로 음식을 챙겨서 저에게 또 들고 와서, 그런 날은 갑작스런 여러 사람의 방문에 계속 현관문을 열어주고 접시를 받으며 고맙다고 말해야 하며, 이 많은 고기들을 이미 배부른 상태에 먹을 수 없으니 잘 식혀서 냉장고에 보관하려고 분주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저는 입덧과 상관없이 둘째 임신 이후로 고기가 거의 몸에 받지 않아서 고생 중인데 말입니다!!

이렇게 그리스인들의 부담스런 태도 덕에 저는 평소 몰랐던, 억지로 먹는 고통이 배고픈 고통 이상이란 것을 새삼 확인하고 있습니다.

엉엉

 

며칠 전 이웃 바비큐 파티 때 이웃인 야니스 씨가 가져다 준 고기와 감자튀김

 

 

 

다행히 요즘은 산부인과 의사의 조언을 핑계 삼아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은 적당히 거절하는 요령이 생겨서 시어머님께서도 크게 강요는 못 하고 계시지만, 좀 나이가 있는 어르신이 사는 다른 집에 가게 되면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 발생해서 예의상 "정 그러시다면 조금만, 정말 조금만 주세요." 라고 애원을 해야 할 지경에 이르곤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임산부라면 일단 냄새를 맡은 것은 무엇이든 먹어야 아기에게 좋다!' 라는 그리스인들의 태도가 역시 맛있는 먹거리를 좋아해서 집밥에 집착하고 냄새에 유독 민감한 그리스인들다운 태도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너털웃음을 짓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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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께서 저를 많이 축하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댓글에 일일이 답하진 못 했지만 모든 댓글들을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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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꿋꿋한올리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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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5.06.04 0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BlogIcon 레오맘 2015.06.04 08: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흐미~별 이상한 풍습도 다 있군요.그리스는...임삼부는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야하는데요...아...한식이 얼마나 드시고싶으실까?한국에선 임신중에 먹고싶은 음식을 못먹으면 입이 삐뚤어진다고하는 말이 있는데...뭔가 그리스랑 비슷한것같으면서도 틀리네요.

  4. mariacallas1 2015.06.10 10: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사스~~~^^

    역시 정이 많은 나라네요. 그리스는

    ㅎㅎㅎ이궁...무슨 음식이든 먹어야한다니...단호박이군요ㅠㅠㅋ

    가을이면 둘째가 건강히 찾아오겠네요.

    지금 제 입가에는 미소가 한가득이랍니다.

    올리브나무님 오늘도 좋은 날 되시구...건강하세요^^

  5. 리아 2015.06.14 22: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좋은 소식 축하드려요~! 오랜만에 왔다가 좋은 소식 보고 가니 기분 좋네요. 몸 조리 잘하시고요~!!!

  6. BlogIcon 채영채하맘S2 2015.06.16 17: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무지 오랜만에 들렸더니 이런 반가운 소식이!!! 넘넘 축하드려요. 저도 올리브나무님 그 마음 잘 알아요. 제가 둘째를 가졌을 때 임덧을 임신 사실을 안 순가부터 낳을 때까지 했는데 이상하게 김이나 미역 종류 먹으면 속이 안 좋더라구요. 그래서 왠만하면 피했는데 시댁에 가면 잘 먹어야된다면서 주시니 거절도 한두번이지 울며겨자먹기로 먹고나서 고생을.. 이제 입덧이 가라앉으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래도 몸 조심하세요

  7. Favicon of http://lincat.tistory.com BlogIcon 적묘 2015.06.21 15: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축하드립니다 ^^ 그리고 메일도 보냈거덩요~
    확인 꼭 해주세용
    예전에 보낸 그 다음 메일로 보냈어요~

  8. Favicon of http://blog.daum.net/jha7791 BlogIcon Lesley 2015.06.21 1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래간만에 이 블로그 왔더니 둘째아이를 가지셨네요.
    축하드립니다~~ ^^
    그런데 음식을 마구 권한다니, 아무리 챙겨주려는 뜻이라고 해도 좀 난감할 것 같네요.
    항상 건강 잘 챙기시고 튼튼한 아기 낳으시기 바랍니다!

  9. BlogIcon tabby 2015.06.25 2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왔더니 이런 놀라운 소식이!
    축하해요
    건강하고 행복한 아기가 태어나길 기도할게요

  10. Favicon of http://kaj6921.tistory.com BlogIcon 복실이네 2015.06.29 12: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축하드려요~^^
    오랫만에 들어와서 휴면 풀고 봤다 이런 기쁜 소식을~~~
    마리아나 닮은 이쁜 여동생이 생겨서 더 기쁘시겠어요.

    저는 입덧을 별로 하지 않아 그 고통을 모르지만 정말 고생 많이 하셨네요.
    배속 아기와 함께 건강하게 여름 잘 나시고요.
    입덧으로 고생 많이하셨으니 아기 낳을때는 순풍~ 힘한번 딱~ 주고 낳으실거에요~^^

  11. 2015.06.29 1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2. BlogIcon 안수정 2015.07.01 13: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계속 열심히 보고있어요 그리스뉴스보면서 걱정이 많이되네요 임신중이라 더힘들거같은데 가까운곳도아니라서 더더욱 걱정됩니다 힘내세요

  13. 2015.07.02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4. BlogIcon 최명숙 2015.07.03 08: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스관련 기사보며 걱정되서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들어왔더니 경사스런 일이 있었네요 축하드려요 예쁜 아가야 만날날을 기다리며 좋은소식 기다릴께요

  15. 한결 2015.07.06 14: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우연히 알게 되어 댓글 한번 없이 글을 읽은지도 오래네요.
    뉴스를 통해 그리스 소식을 들었어요. 바로 올리브나무님 밖에 생각 안나더라구요.
    그래서 안부댓글 한번 남겨봅니다.
    그리고 둘째아이 임신 축하드려요.

  16. BlogIcon tabby 2015.07.06 16: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스소식을 듣고 걱정되서 와봤어요 잘지내고계시겠죠?

  17. BlogIcon 포로리 2015.07.07 11: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리아나 동생이 생겼다니 너무 축하드려요. 온가족이 기뻐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몸 건강하시고 꼭 적당한 휴식 가지세요. 분명 무리하실까봐서요. 그리스금융위기가 남의 일이 아니게 느껴지는 것은 올리브나무님 때문이겠죠. 우기를 잘 넘기시길 빕니다. 건강하세요

  18. 김영미 2015.07.10 0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 어머님 말씀이 정말 재미있으셔요 이마에 점 생겼다!
    이웃분들의 따뜻한 배려가 너무 과하셔서 입덧하실때 얼마나 힘드셨을지
    짐작을 해봅니다
    아무쪼록 순산하시기를 멀리서 기도 드려요 올리브 나무님!
    저희는 여름방학이라 뒹굴며 지냅니다

    최근에 자연발생 화재로 이웃동네에서 대피한 이재민들이 저희 동네에 많이 머물고 있어요
    여름이면 발생하는 일이지만 이번에 규모가 크고
    첫눈 올때까지 계속 불이 꺼지지 않을거라네요
    연무가 끼어 종종 공기도 안좋아지곤 해요

    오늘도 즐거운 일상보내시길 바랍니다
    막스 정말 많이 컸네요 ㅎㅎ

  19. revekkawings 2015.07.10 17: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리브나무님!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건강하게 아기 출산하시고, 그리스의 여름도 잘 나시길 바래요~~

  20. Favicon of http://lesliekim.tistory.com BlogIcon Leslie Kim 2015.08.16 21: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입덧만 아니면 괜찮은 풍습(?)이군요. 츄릅.

  21. Favicon of http://lifemaruilsan.tistory.com BlogIcon 생명마루한의원 일산점 2016.05.11 11: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과는 많이 비슷하면서도 약간은 다른것 같네요^^
    처음 블로그를 방문하여 보게 됐는데
    재밌는 포스팅이 많아 자주 들러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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